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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로 / 서울대 교수·전기정보공학


알파고는 강했다. 인공지능(AI)의 한 분야인 기계학습을 연구하는 필자조차 이세돌의 우세를 예상했지만, 승리는 최신 기술로 무장한 ‘알파고’의 몫이었다. 9일은 첫 대국이어서 최종 승부가 난 건 아니지만, 이세돌 본인이 “알파고가 한 번만 승리해도 사실상 인간의 패배”라 했을 만큼 첫 패배는 충격적이다.

1950년대 탄생한 인공지능은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대표되는 기계학습의 진보, 강력한 반도체의 등장 및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주로 규칙기반 (rule-based)의 인공지능 기술이 연구됐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빅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병렬처리 기술과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 학습하는 데이터 주도적(data-driven) 기계학습 기술이 꽃을 피우면서 알파고와 같은 인간 수준 인공지능 구현이 가능하게 됐다.

기계가 넘보기 힘든 인간 최후의 지적 보루 중 하나로 여겨지던 바둑 정복 이후 인공지능 기술의 단계는 무엇일까? 단기적으로는 또 다른 게임인 스타크래프트 등이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알파고 제작사인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에 따르면, 게임 등 한정된 분야가 아닌 여러 분야에서 지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인공범용지능(AGI) 구현이 될 것이며,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료 분야 적용이 계획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인간이 해독하기 벅찰 만큼 방대한 의료 정보가 축적되고 있으며, 1997년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꺾었던 IBM의 ‘왓슨’이 최근 정밀 의료 분야에 활용돼 약 80%의 암 진단 정확도를 보이는 것을 고려하면 그리 놀랍지 않은 전망이다. 의료진의 집단 지성에서 도출되는 규칙 기반(rule-based)으로 이뤄지는 임상적 진단 과정에, 다양한 의료 정보에 근거한 데이터 주도적 판단이 접목된다면 의학 분야에서 또 한 번 인공지능의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이세돌-알파고의 대국에 앞서 “결과와 관계없이 승자는 인류다”고 한 에릭 슈미트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 회장의 언급처럼, 그 혜택은 고스란히 인류의 몫이 될 것이다. 바둑에서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의 다음 상대는 전설적 명의 화타(華陀)가 되는 셈이다.

싫든 좋든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인공지능 시대는 우리에게 도전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자동차 발명 이전에 도로교통법이 없었던 것처럼, 지금까지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는 인간 외 법적 주체에 대한 고려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인공지능 기술인 자율주행차의 딜레마(사고 시 운전자·보행자 중 누구를 살릴지 결정함)에서 보듯이, 기술적 진보를 사회에 올바로 환원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윤리적 논의 및 법제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스티븐 호킹의 경고처럼 전투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정복한 인공지능 기술이 ‘전쟁 기계’의 발명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국가적으로는 한국의 강점 분야인 하드웨어와 미래 유망주인 소프트웨어 분야의 고른 발전을 이끌 인공지능에 대한 선제적 연구·개발이 필수적이다. 이를 발판으로 한 제조업·서비스업의 도약이 절실하다.

바둑을 수담(手談)이라 했던가. 인공지능을 넘어 ‘인공감성’ 시대가 온다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따뜻한 인술(仁術)을 펼치던 의사의 손길이, 다정다감하게 고민을 들어주던 어르신들의 지혜가, 함께 일하며 정을 쌓아가던 동료의 숨결이 그리워지게 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