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보다 박근혜 대통령에 가까운 중도
법안표결·발언으로 본 유일호 후보자의 성향 분석

2011년 11월 담배 가격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따라 자동으로 인상하자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초선이던 유일호 의원이 발의한 담뱃세 법안이다. 그는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담배 가격을 올리면 서민 경제에 부담이 되고 위조, 밀수담배 유통 등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담배에 부과되는 국민 건강증진 부담금을 소비자 물가지수에 연동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가격을 점진적으로 올려 안정적으로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국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처럼 담배 가격 인상론이 나올 때마다 회자되는 법안이다.
차기 경제사령탑을 이끌 유일호 후보자의 경제관을 엿볼 수 있다. 11일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조세·재정 전문가인 그의 정책 운영 방향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는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이번 청문회에선 도덕성 검증 못지않게 정책 방향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이끄는 데이터저널리즘랩 연구팀과 중앙SUNDAY가 공동으로 투표 성향을 분석한 결과 유 후보자는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을 부분적으로 계승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경제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유 후보자가 최 부총리보다 중도적인 경제관을 지녔다.
18대 의원 253명 중 진보 순위 174위
유 후보자는 최 부총리에 이어 정치인 출신으로 경제 사령탑을 맡는다. 18대·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동안 이들이 경제 관련 571개 법안을 두고 어떤 투표를 했는지 25회 이상 표결에 참석한 18대(253명)·19대(259명) 의원의 투표 성향과 비교했다. 이 분석에서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 개념이다. 한규섭 교수는 “미국 등 정치 선진국에서 의원을 평가할 때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며 “투표 결과를 통해 의원들의 정치·경제 성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18대 국회의원에서 가장 진보적인 의원을 1위로, 가장 보수적인 의원을 253위로 했을 때 최 부총리는 241위(95.2%, 100%에 가까울수록 보수)다. 가장 보수적인 투표성향을 나타낸 의원 중 하나다. 이와 달리 유 후보자는 174위(68.7%)로 중도에 가깝다.
오히려 유 후보자와 비슷한 투표성향을 보인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당시 18대 국회의원이었던 박 대통령은 132위(52.2%)다. 한나라당(164명) 내에선 52위로 진보적인 투표성향을 띠었다. 한 교수는 “박 대통령은 당시 TK(대구·경북) 지역구 의원으로 여당 내에서도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정책 면에서 MB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때 유 후보자가 박 대통령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가 ‘가나다’ 순서에 따라 앉은 곳이 박 대통령의 옆자리였다. 박 대통령이 복지나 재정 관련 법안을 낼 때 조세·재정 전문가인 유 후보자에게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유 후보자는 비서실장과 국토부 장관을 거쳐 경제부총리 후보자로 내정돼 여전히 박 대통령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
19대 국회 들어 박근혜 정부로 바뀌어도 유 후보자는 기존과 유사한 투표성향을 보였다. 경제 관련 법안 표결에 25회 이상 참여한 259명 의원 중 191위(73.7%)다. 반면 최 부총리는 252위(97.2%)로 보수적인 투표성향이 짙어졌다. 경제 관련 법안에 투표한 새누리당(137명) 의원 중에서도 130번째다. 한 교수는 “최 부총리가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MB 정책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유 후보자는 두 정권 모두에서 정부·여당의 경제정책에 무조건 동의하기보다 자기 소신에 따라 투표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재정 건전성 확보가 정부 역할”
이번 조사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변수는 여야 간에 의견이 엇갈린 투표였다. 대표적인 법안이 ‘한국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다. 여야 의원이 3년이나 줄다리기 끝에 2011년 8월 국회를 통과했다. 여당 의원 상당수가 반대할 때 유 후보자는 찬성표를 던졌다. 이 법은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인 ‘물가안정’ 외에 ‘금융안정에 유의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한국은행은 단독 조사권을 갖지는 못했지만 대신 공동조사를 요구할 경우 금융감독원이 한 달 내에 응할 것을 대통령령에 명시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은행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한 법안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 후 한국은행은 1년에 두 차례 금융안정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유 후보자의 김문구 보좌관은 “당시 유 후보자도 고민이 많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였기 때문에 안정적인 금융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유 후보자는 당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소신에 크게 벗어난 경우에는 당론에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대로 투표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팀은 유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 의미망 분석(Semantic Network Analysis)을 했다. 그가 18대 국회의원 시절 본회의, 상임위원회 등에서 발언한 내용(단어 총 7만3518단어)을 취합했다. 의미망 분석은 말이나 글에서 단어 간 연결을 통해 내포된 의미를 유추하는 기법이다. 유 후보자의 언어에서 연결 중앙성이 가장 큰 단어는 ‘법’과 ‘정부’다. 연결 중앙성은 단순한 단어 사용 횟수가 아니다. 다른 어휘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지를 통해 특정 단어의 실질적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법은 당시 유 후보자가 국회의원으로서 입법 활동을 하면서 나온 단어로 분석할 수 있다.
다음으로 연결 중앙성이 큰 정부를 통해선 그가 생각하는 정부의 역할을 유추할 수 있다. 정부와 가장 밀접성이 높은 단어는 재정(58회)이었다. 뒤를 이어 정책(23회)·경제(21회)·국민(19) 등 순으로 정부와 연결성이 높았다. 한 교수는 “결론적으로 유 후보자의 공식 발언에서 정부와 밀접성이 높은 단어를 조합하면 ‘정부는 효율적인 경제정책으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로 축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후보자는 저서 『국회의원 유일호의 경제이야기 정치이야기』에서 “금융위기 이후 재정 지출 증가로 재정수지 악화와 국가채무 급증이라는 재정 건전성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의 예상대로 한국 국가 부채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올해에는 중앙·지방정부 부채가 645조2000억원으로 늘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처음으로 40%를 넘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유 후보자는 8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관련 2차 서면 답변서에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단기간 내에 국가채무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국민의 부담을 늘리는 직접적인 증세는 최후의 수단이며 현재 경제상황에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며 “경기 활성화를 통해 세수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비과세 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세입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전성인 “가계부채 대책 마련 시급”
유 후보자는 안정적인 세입 확보로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원칙을 중시한다. 그가 국회의원 시절 발의한 법안을 살펴봐도 증세보다 비과세 감면 축소, 탈세 방지 등 조세 개혁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유 후보자의 새 경제팀이 출범하면 4대 공적연금을 포함한 복지 예산은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는 청문회 답변서에서 “최근 10년간 복지 분야 예산 증가율(8.2%)이 전체 예산의 평균 증가율(5%)의 1.5배”라며 “향후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재정사업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유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두 차례 인사청문회 관련 서면 답변을 통해 3기 경제팀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노동·금융 등 4대 개혁의 성과를 조기에 가시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조 개혁과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 입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 경기 회복세가 이어질 수 있도록 내수 활성화, 수출회복 총력지원 등으로 경제 활력을 강화하고 서민 물가 안정 등 민생을 위한 노력도 함께 하겠다고 덧붙였다.
일부 금융 전문가는 새해 들어 중국 증시가 폭락하는 등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데 유 후보자가 경제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만 전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 후보자는 답변서에서 “가계 부채와 주택 공급 과잉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며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신흥국에 비해 급격한 자본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성장 구조에서 환율 급등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나고 있어 과거 외환위기보다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며 “하루빨리 가계부채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무엇보다 유 후보자는 구조 개혁이 더 이상 늦춰지지 않도록 경제 활성화 법안 통과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