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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경제·우주 … 박 대통령, 양국 관계 영역 넓혀

[박 대통령 방미 결산] 연설 키워드로 본 한·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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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한국시간)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미(對美)외교를 평가할 시험대였다. 이번 정상회담에 앞서 박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자 박 대통령의 균형외교에 대한 미국 조야(朝野)의 의구심은 깊어졌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박 대통령의 메시지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린 이유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미 일정 기간 동안 미 펜타곤(국방부)을 방문하고,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연설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모두 네 차례의 공식 연설을 통해 2013년 5월 취임 이후 첫 미국 방문 때(세 번)보다 많은 발언을 했다. 박 대통령이 이번 방미를 통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중앙SUNDAY는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팀과 공동으로 이번 방미 기간 동안 박 대통령의 연설문 전체를 대상으로 ‘의미망 분석(Semantic Network Analysis)’을 실시했다. CSIS, 한·미 재계회의 총회, 한·미 우호의 밤, 한·미 첨단산업 파트너십 포럼에서의 박 대통령 연설문에 쓰였던 표현과 키워드들을 1차 방문 당시 연설문과 비교·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연설문에 등장한 단어 가운데 ‘중앙성(centrality)’이 높은 단어는 국명인 ‘한국’과 ‘미국’이란 단어를 제외하면 ‘양국’(50.97·1위), ‘경제’(41.02·3위), ‘협력’(37.54·5위) 등의 순이었다. ‘중앙성’이란 단순한 빈도가 아니라 특정 단어의 실질적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말하는 사람이 큰 의미를 둔다는 뜻이다. ‘공동’(15위), ‘발전’(17위), ‘동맹’(19위) 등 양국 간의 우호적인 협력 관계를 강조하는 단어들이 대거 상위권에 포진됐다.

첫 방미 땐 대북 안보 관련 언급 많아
2013년 박 대통령의 첫 방미 당시엔 ‘북’(1위), ‘한반도’(9위), ‘도발’(15위) 등 대북 안보 관련 언급이 많았다면, 이번 방미 연설에선 ‘기술’(12위), ‘글로벌’(14위), ‘우주’(44위) 등 포괄적인 분야의 협력을 의미하는 단어가 많은 것도 눈에 띄었다. 한규섭 교수는 “2013년 첫 번째 방문 때는 북한 핵실험 등으로 안보와 한·미 동맹 강화에 대한 메시지가 강조됐다면, 이번 방문에선 전통적인 동맹을 강조하면서도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등 경제·과학 분야까지 한·미 관계 발전 영역을 넓히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분석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정부 간 교류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박 대통령은 미국의 여론 주도층과 국민을 상대로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하는 공공외교를 펼치는 데 주력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한·미 동맹에 균열이 생겼다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데 상당 부분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이날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실시한 공동 기자회견문에서도 이 같은 기조가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 도중 ‘동맹’이란 단어를 12차례나 언급했다. 발언 중간에 “포괄적 글로벌 동맹” “핵심축” “진화” 등의 표현을 써가며 한·미 동맹의 견고함·강력함과 함께 새로운 발전 방향을 강조했다.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 이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정의했다면 한·미 관계에 대해선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현안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는 ‘포괄적 글로벌 동맹’으로 규정하는 등 차별성을 부각시킨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김현욱 교수는 “우주, 난민 지원, 폭력적 극단주의 대응 등에 이르기까지 한·미 동맹의 현안이 글로벌한 측면으로 상당히 확대됐다”며 “한·미 동맹이 단순한 안보 동맹을 벗어나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걸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오바마와 회담 때 ‘중국’ 6번 언급 이례적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중국’을 6차례나 언급한 것도 이례적이다.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이후 워싱턴 일각에서 나돌았던 한국의 ‘중국 경사론(한국이 미국보다 중국에 기울었다는 뜻)’을 불식시키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가 양립이 가능하다’고 말했고, 또 우리 정부의 대(對)중국 정책을 지지했다”며 관련 발언을 직접 소개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못지않은 중요한 이슈는 중국과의 문제였다”며 “한국의 대중 정책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를 공개석상에서 밝힘으로써 일본에서 주장하고 있는 한·중 밀착설을 방어할 수 있는 명분과 근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2013년 박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 당시 연설문을 분석해 본 결과 중국과 미국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시각차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박 대통령은 중국 칭화대와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 두 차례 연설을 진행했다. 연설문에선 ‘경제’(6위), ‘문화’(11위), ‘경제인’(12위), ‘교역’(16위) 등 경제·문화 분야와 관련된 어휘들의 중요도가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흥미로운 건 양국 관계를 설명할 때 미국에서는 전략적인 협력 관계인 ‘동맹’을 앞세웠다면, 중국에서는 ‘친구’ ‘뿌리’ 등 문화적 유대감을 강조하는 단어들을 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안보와 관련된 이슈에서도 온도 차가 드러났다. 중국에선 북한에 대해 직접적인 표현 대신 ‘책임’ ‘변화’ ‘미래’ 등의 중립적인 어휘를 내세워서 표현하는 경향이 강했다. 한규섭 교수는 “두 국가에서의 연설에서 ‘동북아’ ‘아시아’ 등의 어휘는 모두 핵심 개념으로 등장했지만 ‘원자력’ ‘도발’ 등 북한의 위협에 관한 부정적 어휘들은 미국에서의 연설에서만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정상회담 후속조치 가시화 관건
역대 한·미 정상들의 만남이 항상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 대북(對北)관의 차이에서 미국과 마찰을 빚곤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1년 부시 대통령의 취임 직후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워싱턴으로 달려갔지만 돌아온 것은 ‘이 양반(this man)’이란 표현이었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들고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2003년 5월 미국 방문 당시 “53년 전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격정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부시 정부를 설득하고자 노력했지만 오히려 국내에서 대미굴욕 외교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무너진 한·미 동맹 복원’을 외교의 최우선 목표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중국과 싸늘한 냉각기를 거쳐야 했다. 최강 부원장은 “한·미 동맹의 뉴프런티어(새로운 지평)를 만들어간다는 의지 아래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합의를 실제 후속 조치로 이어가는 행동들이 이어져야만 미국도 한·미 관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