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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말에서 국가관을 엿볼 수 있을까. 연구진은 중앙SUNDAY와 공동으로 대통령 연설문, 수석비서관회의 및 국무회의 언급, 외교 사절 접견 및 귀빈 오찬 인사말 등 지난해 취임 이후 올해 10월 말까지 1년8개월간 박 대통령이 공개 행사에서 발언한 내용을 취합했다. 모두 424건의 문서(약 24만 단어)로 정리됐다.

이에 대해 의미망 분석(Semantic NetworkAnalysis)을 실시했다. 이는 말이나 글에서 단어 간 연결을 통해 내포된 의미를 유추하는 기법이다. 주요 단어들이 같은 문장에 함께 등장하는 정도를 측정해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국가의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 판별한 것이다.

2008년 미국 웨슬리안대 엘빈 림(ElvinLim) 교수는 역대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와 신년사를 분석한 『대중적 대통령의 등장』이란 책을 냈다. 림 교수는 대통령 수사의 변화를 통해 ‘대중적 어필’ 능력(going public)이 대통령 리더십의 근원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해외에서는 의미망 분석을 통해 정치지도자의 속성을 파악하는 시도가 일반화돼 있다.

우선 박 대통령의 언어에서 ‘국가’와 연결된 단어들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분석 결과 국민(249회), 발전(200회), 경제(189회), 우리(151회), 정부(98회) 등의 밀접성이 높았다. 세월호 참사(4월 16일) 전후도 비교해봤다. 세월호 이전에는 발전(116회), 국민(101회), 경제(78회) 등이 ‘국가’와 밀접한 단어로 나왔다. 반면 세월호 참사 뒤엔 안전(72회), 국민(59회), 혁신(52회) 등이었고 경제(43회), 정부(39회)가 뒤를 이었다.

이명박·노무현 전 대통령이 각각 다섯 차례씩 낸 신년사에 대해서도 의미망 분석을 진행했다. 두 대통령은 ‘국가’ 대신 ‘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나라’와 함께 경제(3회), 우리(2회) 등이 등장했다. 특이한 건 세계(3회)라는 단어의 밀접성이 컸다는 점이다. 이 전 대통령의 국제 지향성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반면 ‘정부’와의 연결성은 낮았다. 노 전 대통령의 신년사에선 우리(6회)가 압도적이었다. 공동체의식을 중시했음을 추정케 한다. 국민(2회)도 등장했으나 ‘정부’는 없었다.

결론적으로 박 대통령의 공식 발언에서 ‘국가’와 밀접성이 높은 단어를 조합하면 “정부가 앞장서 경제발전을 이룩해 우리 국민을 잘살게 해주겠다”로 축약할 수 있다. 관(官) 주도형 국가관인 셈이다.

연결 중앙성이 가장 높은 단어의 경우, 박 대통령은 단연 ‘경제’였다. 출현 빈도는 424건의 문서에서 2008회 등장했다. ‘연결 중앙성’이란 다른 핵심 단어들과 함께 언급되는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반면 공식 연설문에선 ‘국민’의 연결 중앙성이 가장 높았다. ‘국민’의 연결 중앙성을 1로 놓았을 때 ‘경제’는 0.994였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경제’의 연결 중앙성은 0.640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보다 훨씬 낮아 0.277에 불과했다. 또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전후에도 ‘경제’의 연결 중앙성에서 거의 변화가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년사 16년치(1964~79년) 의미망도 살폈다. 분석 결과 ‘국가’는 우리(31회), 민족(16회), 발전(15회) 등의 단어와 밀접성이 높은 반면 ‘정부’와는 낮았다. ‘경제’의 연결 중앙성은 0.200 수준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비해 한참 낮았다. 60~70년대 산업화를 선도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교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최우선주의’는 가장 강렬함을 알 수 있다.

한규섭 서울대 교수·장슬기 연구원·최민우 기자 kyuhah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