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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혁신이야말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 이후 이 같은 언급을 되풀이하며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토록 ‘국가’라는 개념을 강조한 대통령은 드물었다. 하지만 이렇게 언급된 국가의 개념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란 지적이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국가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료하게 밝혀져야 그가 추진하는 국가 혁신(개조)이 국민의 공감대 속에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이에 중앙SUNDAY는 서울대 한규섭(언론정보학) 교수팀과 함께 지난해 2월 취임 이후 1년8개월간 박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무회의 언급 등에서 나온 424개 공식 발언을 취합해 그의 국가관에 대한 의미망 분석(SemanticNetwork Analysis)을 실시했다. 분석 결과 국가와 밀접성을 띤 단어는 국민(249회)·발전(200회)·경제(189회)·우리(151회)·정부(98회) 순이었다. 단어의 출현 빈도만을 따졌을 때엔 경제가 2008회였다. 공식 연설문상 단어의 중요도를 표시하는 지표인 ‘연결 중앙성’에서 ‘경제’는 0.994를 기록해 이명박(0.640)·노무현(0.277) 전 대통령보다 월등히 높았다. 경제를 최우선하는 국가관이 박 대통령의 레토릭에서 드러난 셈이다. 한 교수는 “박 대통령의 국가관을 축약하면 정부가 앞장서 경제 발전을 이룩해 우리 국민을 잘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관(官) 주도형 국가관”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국가관을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중앙SUNDAY는 정치·경제·사회·행정 분야 전문가 8인을 별도로 인터뷰했다. 국정 운영의 경험이 있거나 오랜 기간 국가론을 연구해온 학자들이다. 보수(양승태·좌승희), 중도(김광웅·김의영·이재열·임현진), 진보(김병준·이필상) 성향별로 안배했다.

이들이 진단한 박 대통령의 국가관은 정부가 국민에게 봉사하는 수직적 구조로 요약된다.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은 “박 대통령에게 ‘국가’란 정부가 국민의 삶과 행복을 책임지는 공동운명체”라고 규정했다. 자신을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통치자이자 시혜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장은 “꺼진 성장동력을 되살리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한편 우리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데,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 문화융성을 포괄하는 ‘국가개조론’을 제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국가관을 ‘과학적 국가관’으로 본 김광웅 명지전문대 총장의 진단도 ‘수직성’에 방점을 둔다. 김 총장은 “박 대통령은 과학 기술이 경제발전, 국가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창조경제를 화두로 내세워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고 테크노크라트를 중용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한발 더 나가 “박 대통령의 국가관은 ‘왕도정치 모델’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서양에서 과거 국가란 개인의 자유를 옥죄는 권력기구로 설정됐기에 이를 최소화하려는 ‘불신의 제도화’라면, 동양의 국가는 ‘신뢰의 제도화’를 바탕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국민의 아픈 곳을 치유하고 선정을 베풀어 국민이 마음으로부터 칭송하는 지도자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신뢰의 제도화’를 추구하는 동양적 국가관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박 대통령의 국가 혁신 화두가 시의적절하다는 점에는 대체로 공감했다. 다만 구체적 방법론에선 쓴소리가 나왔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21세기 국가의 범위는 정부를 넘어 시민사회나 시장까지 폭이 넓은데 박 대통령은 국가 개조를 정부, 특히 관료조직 개조로만 한정시켰다”고 지적했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도 “정부가 머리, 국민은 손발이라는 유기체적 국가관”이라 규정하고 “정부가 이끌고 국민은 따라야 한다는 발상은 구시대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의영 서울대 교수는 “과거 ‘국가관이 의심된다’는 표현처럼 자칫 박 대통령의 국가관은 획일성을 강요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