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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경제·노동·개혁. 지난 6일 대국민 담화에 나타난 박근혜 정부 후반기의 핵심 키워드다. 노동개혁 등을 통해 침체에 빠진 경제를 재도약시키겠다는 게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구상이다.

중앙SUNDAY와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팀은 보다 면밀한 분석을 위해 대국민담화(총 1758단어)를 대상으로 ‘의미망 분석(SemanticNetwork Analysis)’을 실시했다. 대선 공약집, 대통령 취임사, 두 차례(2014·2015년)의 신년 기자회견과 비교해 박근혜 정부의 의제가 시기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봤다.

이번 담화에서 ‘연결 중앙성(centrality)’이 가장 높은 단어는 ‘경제’(0.472)였다. ‘우리’(0.341), ‘개혁’(0.329), ‘국민’(0.251)이 뒤를 이었다. ‘연결 중앙성’이란 단순한 빈도가 아니라 다른 어휘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지를 통해 특정 단어의 실질적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지표다. 1에 가까울수록 말하는 사람이 큰 의미를 두고, 0에 가까울수록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선 공약집에서 ‘경제’의 중앙성은 63위(0.055)에 그쳤다. 중요도에선 ‘복지’(0.082·31위)보다 낮았다. 그러다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2위로 급상승한 이후 올해 신년 기자회견과 대국민담화에선 연이어 1위를 차지했다. 박 대통령이 집권 2년차부터 경제 분야에 국정의 무게중심을 뒀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이 개혁과제로 내놓은 ‘노동’(0.171·10위), ‘금융’(0.237·5위) 등의 단어도 상위권에 포진했다. 애초 공약집에서는 135위 밖에 있었던 어휘들이다. 한규섭 교수는 “대선 공약집에서는 민감한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던 것과 달리 집권 후반기를 앞두고 경제활성화를 위해 노동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이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익명을 원한 여권 관계자도 “박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임기 후반기의 첫 번째 과제로 꼽은 건 지금 노동시장을 바꾸지 않고서는 남은 임기 동안 경제적 성과를 이뤄내기 어렵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이라며 “어떻게든 올해 안에는 노동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반면 ‘경제민주화’ 관련 어휘들은 담화에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성장’(0.172·9위), ‘시장’(0.103·20위) 등 경제활성화와 관련된 단어들이 중요하게 다뤄졌던 것과 대비된다. 취임 당시만 해도 ‘경제민주화’는 ‘경제활성화’와 함께 정부 경제정책의 한 축이었다. 2013년 2월 대통령 취임사에 ‘경제민주화’는 경제 관련 어휘 중 4번째로 많은 빈도(5회)를 기록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펼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경제의 중요한 목표”라고도 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이후 신년 기자회견과 대국민담화에서 경제 관련 어휘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중소기업’ 역시 공약집(56위)과 2014년 신년 기자회견(4위) 때까지는 비교적 상위권에 랭크됐으나 올해 신년 기자회견부터는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에 대해 한규섭 교수는 “대선과 집권 초기에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중도로 외연을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잡았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경제활성화를 원하는 보수 지지층, 즉 집토끼를 잡기 위한 전략으로 메시지가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대표 경제정책인 ‘창조경제’도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점차 중요도가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창조’는 ‘기업’과 ‘경제’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중앙성(0.323)을 나타냈다. 하지만 올해 신년 기자회견과 대국민 담화에선 각각 10위(0.165)와 13위(0.145)에 머물렀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임기가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국민은 더 이상 ‘창조경제’ 같은 구호적인 계획에 공감하기보다는 실질적인 경제 성과를 통해 정권을 평가한다”고 했다.

정책 기조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는 보완적인 관계”라면서 “지속가능한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롯데그룹 사태에서 나타난 재벌 대주주의 사익 편취행위 같은 불공정한 거래를 없애는 등 경제민주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