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쇼크에서 배우자] [4] 국민 불신 키운 비밀주의

정부가 병원이름 공개하자 SNS서 메르스 언급 급감
국민에 정확한 정보 알리면 루머·유언비어 힘 못써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악화시키고 필요 이상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한 데는 보건 당국의 정보 비공개와 엉터리 정보 제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태 초기에 메르스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번진 것은 평택성모병원 등에서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전국 병원으로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국 병원의 의료진은 당시 어느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는지, 환자가 어느 병원을 거쳐 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 이에 따라 14번 환자 같은 수퍼 전파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3일 동안 메르스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사스·신종플루 등 해외 감염병 유입이 늘자, 질병관리본부는 2014년 ‘감염병 위기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매뉴얼에는 어떤 경우 병원 이름을 공개한다는 내용이 아예 없었다.

5월 20일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자, 보건 당국 관계자는 그가 입원한 평택성모병원을 찾아가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사실을 절대 말하지 말고, 질병관리본부 통제에 따르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정부의 ‘비밀주의’에 따라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는 사이, 퇴원자들은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전국으로 흩어져 메르스를 전파한 것이다. 이에 전국 병원의 감염내과 교수 150여명은 5월 말부터 네이버 모바일 커뮤니티인 ‘밴드’에 메르스 환자 정보를 공유해 대응했다. 이 와중에도 보건 당국 관계자는 “병원끼리 환자 정보 공유는 안 되는데…”라는 말을 반복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얘기다.

6월에 들어서면서 병원 간 전파가 심각해지자, 병원협회도 “환자가 발생한 병원 이름을 공개해야 한다”며 “특히 병원 간 전파를 막기 위해 환자와 격리자 명단을 의료계에라도 유통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3일엔 박근혜 대통령도 “국민들에게 메르스 관련 정보를 제대로 알리라”고 지시했다. 5일엔 참다못한 병원협회가 병원 이름 공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으나 보건 당국은 압력에 자진 취소했다.

보건 당국이 평택성모병원 이름을 처음 공개한 것은 첫 환자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난 5일이었고, 환자 발생·경유 병원을 전면 공개한 것은 지난 7일이었다. 이미 메르스 환자들은 전국으로 흩어진 뒤였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엔 병원 이름과 관련한 루머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7일 정부가 병원명을 공개하자 SNS 상에서 메르스 언급량은 급격한 감소세(7일 16만4729건→16일 9만14건, 소셜메트릭스 조사)를 보였다.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정교민 교수는 “정확한 정보가 나오자 더 이상 루머나 유언비어 형태의 잘못된 정보들이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광우병 때도 세월호 때도 정부의 비밀주의가 사태를 키웠다. 세월호 때는 “아직도 에어포켓이 있다고 판단하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지난해 4월 19일 당시 이용욱 해양경찰청 정보수사국장)고 말하거나, 세월호와 진도 관제센터, 해경과 세월호 교신기록을 공개하지 않아 불신을 자초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메르스 사태 초기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메르스의 전파력을 과소평가했다”며 “병원명을 공개하면 해당 병원이 신고를 제대로 안 하거나 환자를 받지 않을 우려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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