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뜨리셨네요.”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최신 스마트폰이 자꾸 문제를 일으켜 찾아 간 서비스센터에서 이런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물에 빠뜨린 적도 없는 신형 스마트폰을 두고 사용자의 부주의로 물에 빠뜨렸으니 돈을 내고 수리하라고 한다면 정말 억울할 터. 서비스센터는 무슨 근거로 물에 빠졌다고 하는 걸까.

스마트폰 배터리 뒷면에는 작은 라벨이 하나 있다. 침수(浸水) 라벨(LDI, Liquid Damage Indicator)이라고 불리는 이 라벨은 물에 닿을 경우 붉게 변한다.

최근 윤병동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사진)팀은 침수 라벨이 물에 닿지 않아도 오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논문을 발표했다고 2일 밝혔다.침수 라벨은 ‘전자기기 품질 보증제도’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물에 빠지지 않아도 색이 변해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종종 생긴다. 애플은 이 소송으로 2013년 530억 원이라는 막대한 합의금을 지급한 바 있으며, 국내에서도 2010년 아이폰 3G 소비자가 소송을 걸기도 했다.

침수 라벨(LDI)의 구조 - RESS 제공

침수 라벨은 고체 상태의 잉크 위에 다공성 필름과 투명한 PET 필름을 쌓아놓은 구조다. 표면에 물이 닿으면 고체 상태의 잉크가 물과 반응해 액체 상태가 되고, 다공성 필름에 스펀지처럼 흡수돼 올라와 표면을 붉게 물들이는 원리다.

연구팀은 급격한 온도 변화가 생기면 라벨 색이 변하는 오작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가령 추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면 안경에 서리가 맺히는 것처럼, 따뜻한 온도에서 공기 중에 많이 포함돼 있던 수증기가 갑자기 온도가 떨어지면 주변 물체에 붙어 이슬이 맺히는 응축현상이 스마트폰 내부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바지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고 운동할 때, 찜질방에 갔을 때 등 권장 사용조건을 벗어나지 않아도 라벨의 색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라며 “라벨의 색 변화로 침수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신뢰성 분야 세계 최고 저널 ‘신뢰성공학과 시스템안전(Reliability Engineering & System Safety)’ 5월 5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권예슬 기자 ys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