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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 즐기는… 멋 좀 아는 유커들

서동일 dong@donga.com ·김재형 기자

한국 20, 30대의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18일 오전 11시경 찾은 이곳에서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과 마주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중국 선전(深(수,천))에서 친구 2명과 함께 왔다는 수주췬 씨(30·여)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좋아해 한국에 가면 꼭 강남에 가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며 “오늘 두 손에 모두 쇼핑백을 들고 마음에 드는 거리 곳곳을 돌아다닐 계획”이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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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경 강남역 인근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중국인 남녀 커플이 파스타를 먹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창가 쪽에 앉은 여성은 잔뜩 부은 코 위에 하얀색 거즈를 붙인 채였다. 레스토랑 직원 차정환 씨(33)는 “올 들어 중국인 손님들이 하루 서너 팀은 꼭 찾아온다”며 “특히 중국인 여성의 절반 이상은 근처 성형외과에서 시술을 받았는지 눈 주위나 코를 천으로 가리고 온다”고 말했다.

4, 5년 전부터 서울 명동과 동대문 일대를 ‘리틀 차이나’로 만든 유커들이 강남과 종로, 신촌·홍대앞 등으로 빠르게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단독 입수한 미래창조과학부·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빅데이터 기반의 외국인 관광 산업 지원 시범사업’ 결과 보고서에 따른 해석이다. NIA는 지난해 1월부터 올 6월까지 18개월간 중국의 은련(銀聯)카드 거래 명세를 기반으로 유커들이 서울 어느 지역에서 어떤 물건을 사고, 어떤 음식을 먹는지 분석했다. 은련카드는 중국인 90% 이상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용카드다.

○ 새롭게 떠오른 유커들의 성지

유커들은 올해 상반기(1∼6월) 서울에서 은련카드로 총 1조5917억 원을 썼다. 지난해 상반기 8469억 원보다 87.9%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강남의 거래액 증가율은 115.4%, 종로는 132.4%였다. 유커들의 핵심 관광지는 여전히 명동과 동대문이지만 강남과 종로가 유커들의 새로운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강남구 압구정로 가로수길의 모자가게 직원 김준우 씨(32)는 “지난해부터 중국인이 급격히 늘어 전체 매출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이른다”며 “중국인 손님이 하루 평균 100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커들이 강남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쇼핑이다. 한류 드라마 덕분에 중국에도 많이 알려진 가로수길, 강남역, 인사동, 홍대앞 등 특정 지역을 애초부터 목적지로 삼고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베이징(北京) 출신이라는 류페이신 씨(24·여)는 “지난해 한국에 다녀간 친구가 추천해 공항에 도착한 뒤 곧바로 가로수길부터 찾았다”고 말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처음으로 400만 명을 돌파했다. 일본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형성된 명동 화장품 거리가 이젠 ‘유커 모시기’에 혈안이 돼 있을 정도다.

유커들의 소비는 지역에 상관없이 화장품과 의류에 집중됐다. 이들의 소비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백화점, 면세점을 제외하고 일반 매장에서 구입한 상품만 보면 화장품이 36.7%(거래액 기준)로 가장 많았다. 의류(23.7%), 건강·미용(8.9%), 기념품(5.7%) 등이 뒤를 이었다.

권역별로 보면 강남권에선 유커들의 소비에서 의류(37.9%)가 화장품(12.9%)을 압도했다. 명동·동대문은 의류(38.2%)와 화장품(36.7%) 소비액이 비슷했다. 반면 종로나 신촌·홍대앞에서는 화장품이 의류, 가방 및 신발 등 다른 물건들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

○ 명동에서 커피 마시고 홍대앞에선 닭갈비

유커들의 관광 행태 중 권역별 차이가 뚜렷한 것은 음식이었다. 강남에서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양식(43%)이었다. 강남역 인근 파스타·바비큐 전문점 ‘Big PLATO’ 직원 이민영 씨(26·여)는 “중국인들은 주로 모바일 앱을 통해 우리 가게 위치를 확인한 다음 찾아온다”며 “최근에는 유커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 추천 앱을 만드는 관계자들도 ‘식당 정보 업데이트를 하고 싶다’며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권에서 눈에 띄는 것은 ‘게장 전문 음식점’(4.3%)이 5위를 차지했다는 것. 강남의 일부 간장게장 전문점은 중국 홍콩 대만 등 동아시아권 관광객들에게 관광 명소로 알려져 있다.

신촌·홍대앞을 찾은 유커들은 닭요리(17.5%)를 가장 많이 먹었고 한식(9.8%) 전문점을 많이 찾았다. 반면 유커들의 ‘메카’ 명동과 동대문에선 카페(39.8%)에서 쓴 돈이 가장 많았다.

서울 전체로 보면 유커들이 신용카드를 가장 많이 사용한 음식 업종은 한식·백반(16.3%)이 아닌 커피(23.4%)였다. 양식(10.2%), 삼겹살·갈비(7.7%), 제과(3.7%)가 그 뒤를 이었다.

NIA의 신신애 빅데이터기획부장은 “중국인 관광객들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서울의 숨겨진 관광명소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경우가 많다”며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장소, 인기 있는 상품 등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할인쿠폰을 제공하거나 명소를 소개하면 관광산업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